CASE No.082
사건 파일 · 2026-09-27
철거를 앞둔 청수탕. 장문식은 개업 때부터 물을 덥혀 온 동판 열 장을 작은 생활사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다.그런데 반출 검사 뒤, 보존품 한 장이 사라졌다. 남겨진 것은 분할선이 씻긴 작업도면과 끊어진 핀 하나.그날 폐자재를 챙긴 사람은 여섯 명. 모두 자기 짐은 정당하다고 말한다.퍼스가 젖은 종이를 펼친다. “무게가 같다고, 같은 물건일까요?”
장문식 · 61 · 청수탕 소유주 · 기증 동판 도난 피해자
분할선 없는 작업도면
7×7 판에 남은 각인 열 개. 글자는 소유주가 아니라 동판의 표식이다.
A: 1행 6열 / 넓이 6칸 B: 2행 2열 / 넓이 8칸 C: 2행 7열 / 넓이 6칸 D: 3행 1열 / 넓이 6칸 E: 3행 5열 / 넓이 4칸 F: 4행 5열 / 넓이 2칸 G: 5행 4열 / 넓이 6칸 H: 6행 3열 / 넓이 4칸 I: 7행 3열 / 넓이 5칸 J: 7행 7열 / 넓이 2칸 위에서 아래로 1~7행,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1~7열이다. 도면을 뒤집거나 눈금을 늘리지 않는다.
동판 제작 규정
숫자는 칸 수. 경계가 보이지 않아도 물건의 모양은 바뀌지 않는다.
판은 7행×7열이며 각 칸은 한 변 10cm인 정사각형이다. 동판 열 장은 각각 칸의 선을 따라 놓인 직사각형이다. 회전은 가능하며, 겹침·빈칸 없이 판 전체를 덮는다. 각 동판에는 A~J 중 자기 글자와 넓이를 적은 각인이 정확히 하나 있다. 한 동판 안에 각인 둘을 넣거나 각인 없는 동판을 만들 수 없다. 분할선은 지워졌지만 각인의 위치와 숫자는 훼손되지 않았다. 숫자는 모서리 길이가 아니라 그 동판의 전체 칸 수다. 동판은 모두 같은 두께이며 1칸당 질량은 400g이다. 접기·절단·구멍·겹판은 없다.
끊어진 핀과 보존 영상
핀 4행 3열. 한 장만 사라졌고 포장 방법도 남아 있다.
철거 직전 봉인 사진에는 동판 열 장이 모두 있었고, 반출 허가 대상에서는 전부 제외되어 있었다. 얼굴·복장·시각을 식별할 수 없는 보존 영상은 한 사람이 보존판에서 동판 딱 한 장을 통째로 들어 자신의 가방에 넣는 장면을 담았다. 그 직후 재고가 열 장에서 아홉 장으로 줄었다. 별도 핀 검출기는 바로 그 반출 때 4행 3열 아래 봉인이 끊겼다고 기록했다. 핀은 칸의 중앙에 있어, 그 칸을 덮던 동판이 빠질 때만 끊어진다. 그 사람은 꺼낸 동판의 평면 윤곽 네 변을 포장띠 한 바퀴로 감고 끝을 4cm 겹쳐 붙였다. 접거나 대각선으로 감지 않았고, 띠에 남는 꼬리는 없었다. 공개된 반출 검사 기록은 여섯 명 모두가 한 개씩 포장한 물건의 전후 계량이다. 포장띠 질량은 영점 보정되어 있다. 개별 검사대에서 가방의 내용물이 바뀐 것은 그 한 물건의 추가뿐이고, 띠에서 사라진 길이는 그 물건의 포장에 쓴 길이뿐이다. 나머지 다섯 명도 재질·두께가 제각각인 합법 사각 폐자재 한 개씩을 같은 방식으로 포장했다. 그 폐자재에는 동판의 칸당 질량 규칙을 적용하지 않는다. 증거를 확보한 뒤 배관 사고로 받침판이 무너지고 남은 동판이 뒤섞여 빈자리의 실제 윤곽은 측정할 수 없다. 남은 사진은 위치표와 핀 기록뿐이다.
반출 검사 기록 · 앞장
가방은 g, 띠는 cm. 화살표 왼쪽은 포장 전, 오른쪽은 포장 후다.
윤서진 | 가방 2100→4500g | 띠 300→156cm 강태섭 | 가방 2600→4200g | 띠 300→196cm 문해리 | 가방 1700→4900g | 띠 300→176cm 수치는 보정된 실측값이며 사람별 기록 순서는 반출 시각이나 영상 속 순서가 아니다.
반출 검사 기록 · 뒷장
같은 조건으로 측정한 나머지 세 명의 기록.
배도건 | 가방 3400→5800g | 띠 300→196cm 정유라 | 가방 2200→3800g | 띠 300→196cm 오기범 | 가방 1900→4300g | 띠 300→156cm 수치는 보정된 실측값이며 사람별 기록 순서는 반출 시각이나 영상 속 순서가 아니다.
윤서진 · 34 · 철거 기록 담당
강태섭 · 46 · 폐금속 감정사
문해리 · 29 · 시설 실측 기사
배도건 · 53 · 청산 중개인
정유라 · 41 · 욕탕 소품 매입상
오기범 · 37 · 보일러 정비사
반출실에는 여섯 명만 들어갔고 모두 보존판 가까이에서 일했다. 공용 외투·장갑·동일형 가방 때문에 익명 영상만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없다. 개인별 가방과 띠는 실명 검사대에서 입장 전부터 퇴장 후까지 봉인 표식으로 연속 추적되어 바뀌거나 양도되지 않았다. 짐 포장은 각자 혼자 했고 검사대 밖에서는 내용물을 추가하거나 꺼낼 수 없었다. 외부인·공범·대리 포장자는 없으며 동판을 넣은 사람과 그 가방을 반출한 사람은 같다. 밝은 빨간 얼룩은 여섯 명 모두 쓰던 철거 표시 페인트이며 피가 아니다.